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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볼만한 곳

마음이 편안해지는 걷기좋은 공주의 동혈사를 다녀온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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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곱디곱던 단풍마저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계절에 접어들었습니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살다 제대로 단풍 구경 한 번 못한 지난날에 불현듯 미련이 남았어요. 그래서 잠시 마음을 비우고 나를 찾는 시간을 갖자는 생각으로 행락객들로 붐비지 않으면서 걷기 좋은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동혈사(공주시 의당면 동혈사길 77/ 041-854-2855)

발길이 향한 곳은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동혈사(東穴寺)'입니다. 동혈사(주지 종성 스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로 의당면 월곡리 해발 392m 높이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해 있습니다. 

산사까지 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어 차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에서 동혈사까지 600m에 지나지 않아 다소의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한 후 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 쌓인 고즈넉한 가을 숲길을 걸어 보시길 추천해 드려요. 가을뿐만 아니라 다른 계절에도 숨 쉬는 자연을 체감할 수 있어 위안과 안식을 안겨 주는 공간으로 여겨지거든요. 

이곳저곳 둘러보며 해찰을 떨고 온 길을 뒤돌아보니, 잠시 걸었을 뿐인데 가슴 벅찬 행복감을 안겨준 산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만족감과 그보다 더 큰 기대감을 안고 한 걸음씩 옮기다 보니, 서혈사(西穴寺), 남혈사(南穴寺), 북혈사(北穴寺)와 함께 공주 주변의 4혈사(四穴寺) 중 하나로 전해오는 동혈사의 흔적인 '동혈사지(東穴寺址)' 표지판이 보입니다. 혈사(穴寺)란 '구멍 절'이란 뜻으로 바위 구멍 동굴이나 토굴 등으로 된 수행터 사찰을 가리킵니다. 표지판이 세워진 이곳이 원래 동혈사가 있던 곳이고, 50m쯤 위로 오르면 오늘 최종 목적지로 삼은 이전한 동혈사가 나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동혈사는 일명 '동혈사(銅穴寺)'라고도 했으며, 세워진 연대는 전하는 기록이 없다고 하네요. 일부에서 마곡사의 부속 암자인 북가섭암을 북혈사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현재 동굴을 부속시설로 두었던 4혈사 중에서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동혈사가 유일합니다. 

몇십 m 위쪽으로 오르니, 동혈사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주차장 인근에 서서 올라온 길 쪽을 내려다보니, 조용히 나를 돌아보게 한 가을 산의 넓은 품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주차장 인근에서 산 정상 쪽을 올려다보니, 바위산 아래 전각 한 채가 보입니다. 목적지가 목전에 있다는 걸 알아채자 없던 힘이 솟아나서 다시금 위쪽을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떠나오기 전, 절정기의 단풍은 못 보겠다 싶어 동혈사를 찾을까 말까 망설였었는데요, 경내에 들어서자 부질없는 기우였음을 알아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찾길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큰법당을 향해 성큼 걸어 보았어요. 큰법당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신도분들이 참나무를 간벌 중이셨는데요, 동혈사 주변을 정비하여 오래 볼 수 있는 꽃을 심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쉽지 않은 작업이 끝나면 이곳을 찾는 신도들과 방문객들에게 더 많은 위안처가 선사될 것 같습니다.

동혈사 전각으로는 큰법당(대웅전), 나한전, 요사채가 있고, 고려시대 만들어진 3층 석탑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큰법당과 요사채가 일자형으로 있고, 나한전은 대법당 뒤편 바위산 위에 있습니다. 나한전은 주차장 인근에서 가장 먼저 발견했던 전각입니다. 큰법당 바로 뒤로는 쌀바위전설이 전해지는 동굴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나 스님 앞에

입을 들어 보여 자세히 보니, 목에 가시가 박혀 고통스러워하므로 스님이 가시를 빼주자 은혜를 갚고자 대웅전 뒤 쌀이 나오는

바위를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지니 이때부터 매일 하루 공양을

지을 만큼의 쌀이 나왔지만,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와

절에 공양주 보살님이 쌀 나오는 구멍을 크게 했는데,

쌀은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내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의당면 종합관광 안내 「가이드북」

동혈사 큰법당 왼쪽에는 나한전으로 오를 수 있는 돌계단이 놓여 있는데요, 계단이 꽤 가파르기에 오르실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얼핏 올려다봤을 때도 곳곳에 구멍이 뚫린 바위산이 보였는데요, 계단 중간쯤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석굴(穴)이 보였습니다. 특히 왼쪽으로 난 구멍은 성인 한 명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지만, 혈사의 조건 중에 하나로 꼽히는 샘물은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동혈사 경내에서 만나 뵌 불자님 말씀으로는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 더 위쪽에 직사각형의 석굴이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작은 연못을 조성할 만큼 산에서 계속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니, 어쩌면 동혈사로 불리는 근거는 또 다른 석굴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주 동혈사 삼층 석탑(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유형 제37호)은 두껍고 전형적인 낙수면의 형태와 두툼하게 표현한 전각부의 우동 등에 고려말 충청 지역 석탑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석굴에서 더 위쪽으로 계단을 오르니, 한 기의 석탑과 석불상이 보입니다. 석탑은 '공주 동혈사 삼층 석탑'으로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세 층으로 하고 있으며, 팔각형의 기단 상부에 옥개석을 갑석(甲石, 석탑의 기단 위에 뚜껑처럼 덮어놓은 돌)처럼 놓고 있어 특이점으로 꼽힙니다. 탑 꼭대기 층의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위에 설치된 구슬 모양의 복발(覆鉢/伏鉢, 탑의 노반 위에 주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은 제작 당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약사여래불은 열두 가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의 질병 구제, 재화 소멸, 수명 연장, 의식이 만족을 이루어 주며,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이다.

석불상은 10여 년 전에 동혈사 삼층 석탑 앞에 놓였다고 하는데요, 연꽃 좌대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은 왼손에 약병을 든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입니다. 

나한전(羅漢殿)은 사찰에 있는 당우 중 하나로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나한은 아라(阿羅漢)의 약칭으로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벼랑 위에 세워진 나한전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며 계단 한쪽에 적힌 부처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읽고 나니, 고즈넉한 산길을 거니는 내내 마음이 평온했던 것은 화려했던 꽃과 잎을 떨궈낸 나목들이 자아내는 이 계절의 분위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산사를 찾는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때문인가 봅니다. 

동혈사 약사여래불이 내려다보는 차령산맥 줄기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충전하게 됩니다. 안개 낀 날 아침에 꼭 다시 와보라는 이름 모를 불자님의 말씀처럼 조만간 또 다른 모습으로 지친 중생을 기꺼이 맞이해줄 동혈사를 찾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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