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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볼만한 곳

오래된 건물앞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경치좋은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에 가보았습니다.

공주고등학교와 영명고등학교 사이에 문화유산인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 있다.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공주 최초의 서양식 주거 건물로, 붉은색 벽돌로 지은 3층 건물로 미국 감리교 소속의 선교사 사택으로 사용된 건물이었다.

공주고등학교 삼거리에서 산쪽으로 들어가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공주 중화동 구 선교사 가옥 안내표지가 보인다.

​공주 중화동 구 선교사 가옥 옆에는 근대 교육에 공헌한 사애리시 추모비가 있다. 그곳을 지나가면 영명고등학교로 이어지고, 공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한적함이 장소의 매력을 더해준다.

사애리시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부녀자들과 소녀들을 위한 야학을 개설하였고, 사애리시가 이끈 야학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져 1905년 가을 명선여학당이 창설되었다. 명선여학당은 중등교육을 목표로 하였지만 그동안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성들을 위해 연령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학생으로 받아들여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사애리시는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던 남편 샤프 선교사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충격을 받고 한국을 떠났지만 남편이 묻힌 공주가 그리워 1908년 다시 공주로 돌아오게 된다. 공주로 돌아온 사애리시는 명선여학당의 교장직을 다시 맡아 학당의 명칭을 영명여학교로 바꾸고 부족한 시설과 교원을 보충하는 등 근대 교육의 틀을 갖추는데 기여했다.

사랑과 봉사로 헌신하던 사애리시는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국 당한 뒤 말년을 로스앤젤레스 선교사 양로원에서 지내다가 1972년 101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일제의 위협에도 독립정신과 애국심을 길러주고 많은 여성들을 교육한 사애리시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자2020년 3월의 공주역사 인물로 선정하였으며, 정부는 사애리시의 공로를 인정하여 2020년 3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였다.

​샤프 선교사는 사에리사 선교사와 결혼 3년 만에 전염병으로 영면하자 부인 사에리사는 1908년부터 공주의 영명학당을 비롯하여 논산, 강경 등 충청권에 20개의 학당을 설립해 후학 활동을 하게 된다. 사애리시는 1900년부터 1940년까지 공주를 중심으로 선교사와 교육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교육을 통해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헌신하였으며, 공주에 충청도 최초로 여학교를 세워 유관순 등 많은 여성들을 교육으로 일깨운 근대 여성교육의 어머니이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도 사에리사 선교사가 애제자로 삼고 후에 이화학당에 추천했다고 한다.

중학동 양지바른 동산에 1905년 샤프 선교사가 1900년대 초에 설계하여 건축한 공주의 최초 서양식 3층 건물이다. 한동안 선교사 사택으로 사용되다가 1920년대에는 영명여학교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선교사 가옥으로 쓰이다가 영명학교에서 교육시설로, 그 이후 화가가 사용했다가 지금은 공주시에서 문화유적으로 관리를하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건물 내부로 출입할 수는 없고, 밖에서만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중화동 구 선교사 가옥 건물은 건축적으로 내부의 제단실과 각층의 공간이 스킵 플로어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즉 현관에서 반 층을 올라가면 1층으로, 현관에서 반 층을 내려가면 지하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선교사역이 영명학교의 근대 교육으로 이어져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는 한편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는계기가 되었다.

 

주말에 선교사 가옥에 가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