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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검 해설

풀다보면 흐름이 보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해설 52회 (2)

정답>

'한국사 과제 안내문'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 지도 및 지리서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지도 및 지리서로 '택리지, 동국지도, 대동여지도, 동국여지승람, 조선방역지도'가 제시되어 있다.

동국지도는 정상기(1678~1752)가 최초로 100리 척을 사용하여 제작한 지도이다(1740년대). 참고로 조선 세조 9(1463)에도 정척과 양성지 등에 의해 '동국지도'가 제작된 일이 있는 것처럼 흔히 '동국지도'라 함은 숙종 대까지는 전국을 그린 지도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었고, 영조 대 이후부터는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오답 해설>

택리지는 실학자 청담 이중환(1690~1752)이 현지 답사를 기초로 하여 저술한 지리서이다(1751, 영조 27). '팔도지리지를 참고하여 성종 때 완성된' 것은 동국여지승람이다(해설 참고).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1804~1866)가 제작한 지도이다(1861, 철종 12).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여 거리를 알 수 있게 하였고, 역참, 봉수 등의 주요 시설물을 기호로 표기하여 다양한 지리 정보를 전달하였다. 또 총 22첩의 목판본으로 제작되었다(분첩절첩 방식으로 제작). '한치윤(1765~1814)500여 종의 자료를 참고하여 편찬한' 것은 해동 역사이다(1814, 순조 14).

동국여지승람은 노사신, 양성지 등이 팔도지리지 등을 참고하여 성왕 때 완성한 지리지이다(1481, 성종 12). 각 지역의 지도와 지리, 풍속 등을 총 50권에 수록하였고, 이후 증보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편찬되었다(1530, 중종 25). '복거총론에서 거주지의 이상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은 택리지이다. 택리지는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총론(總論)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복거총론에서 살만한 주거 입지의 조건으로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 가지를 제시하였다.

조선방역지도는 1557(명종 12) 또는 1558(명종 13)경에 제작된 지도이다(국보 제248). 전국 8도의 주현과 수영 및 병영을 표시하였다.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10리마다 눈금이 표시되어 있는' 것은 대동여지도이다.

정답>

'(), 과학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이라는 제목 아래 '()/가 과학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는 천문학에 조예가 깊어 기존의 혼천의를 개량했으며, 그의 학문은 담헌서로 정리되어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는 담헌 홍대용(1731~1783)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 지구 구형설, 지전설 등을 주장하였다.

오답 해설>

[요하네스 테렌츠(1576~1630)]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1789, 정조 13). 한강에 배다리를 놓는 데 사용되었고, 특히 1794년부터 쌓기 시작한 수원성 축조 기간을 단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자동 시보 장치를 갖춘 자격루를 제작한 인물은 장영실(1385?/1390?~1450?)이다(1434, 세종 16).

사상 의학을 정립한 동의수세보원을 편찬한 인물은 동무 이제마(1837~1900)이다(1894, 고종 31).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정리한 지구전요(세계 지리서)를 저술한 인물은 혜강 최한기(1803~1877)이다(1857, 철종 8). 여기서 최한기는 우주 현상과 지리, 문화 현상을 상술하였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함께 주장하였고, 자전과 공전설이 코페르니쿠스의 것임을 밝혔다.

정답>

왼쪽의 말풍선에 '적도의 우두머리는 성은 홍이고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우군칙·오용진 등이 그의 부하라고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또한 선천 부사 김익순이 그들에게 항복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적도들을 즉시 토벌하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대화는 조선 순조 11년인 1811년 평안도에서 발생한 홍경래(1771~1812)의 난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홍경래의 난은 서북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오답 해설>

환재 박규수(1807~1876)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진주[임술] 농민 봉기 때의 일이다(1862, 철종 13).

조병갑의 탐학이 계기가 된 사건은 동학 농민 운동이다(1894, 고종 31).

선혜청과 일본 공사관을 공격한 사건은 임오군란이다(1882, 고종 19).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된 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다. 특히 제2차 봉기 시의 일이다(1894.9).

정답>

()'대왕대비*께서 전교하기를, 이번에 이렇게 만동묘를 철폐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시는 것에 대해서 선현의 혼령이 알게 되더라도 올바른 예법이라고 여기고 유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만동묘를 철폐한 것은 고종 2년인 1865년의 일이다(1865.5).

*[신정]익황후(1808~1890), 이른바 '조대비'를 가리킨다. 순조의 세자인 익종의 왕비이자 헌종의 어머니이다. 18662월에 수렴청정을 거두었다[철렴].

()에서 '최익현이 상소를 올려 대원군의 잘못을 탄핵하기를, 만약 그 지위가 아닌데도 국정에 관여하는 자는 단지 그 지위와 녹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왕은 너그러운 비답을 내려 특별히 그를 호조 참판에 발탁하고 총애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면암 최익현(1833~1906)이 흥선 대원군을 탄핵하여 하야시킨 것은 1873(고종 10) 11월의 일이다(고종의 친정 체제로 전환).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진 것은 1871(고종 8) 4월의 일이다(신미양요).

오답 해설>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된 것은 고종 18년인 18815월의 일이다.

서재필 등이 독립신문을 발행한 것은 고종 33년인 18964월의 일이다.

김옥균 등 개화 세력이 정변을 일으킨 것은 고종 21년인 188412월의 일이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된 것은 고종 19년인 18828월의 일이다.

 

정답>

'음청사는 ()로 청에 파견된 김윤식이 쓴 일기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당시 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실상은 물론 이홍장과 나눈 대담 등이 기록되어 있어 근대사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자료 속 '()''영선사'임을 알 수 있다. 온건 개화파인 운양 김윤식(1835~1922)은 고종 18년인 18819월 청에 영선사로 파견된 바 있다(~1882.11). 이듬해 6월에 발발한 임오군란의 여파로 조기 귀국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근대적 무기 제조 공장)이 설립되었다(1883.3).

오답 해설>

'회답 겸 쇄환사''일본에서 보낸 국서에 회답 국서를 전하고 피로인을 쇄환하기 위해 파견한 사절'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자 일본의 요청으로 파견된 사신 일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1607(선조 40) 정사(正使) 여우길 일행이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이후 1617(광해군 9)1624(인조 2) 두 차례 더 파견된 적이 있다[인조 14(1636)에 이르러 통신사라는 칭호를 다시 사용].

조선책략을 가져와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은 김홍집(1842~1896)이다(1880.9). 김홍집이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주일 청국 외교관[참찬]이었던 황준헌(1848~1905)에게서 받은 책으로, 고종에게 복명하면서 바쳤다(1880.9). 참고로 조선책략에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는 외교 정책(사실상 러시아 견제책)이 담겨 있었는데, 위정척사파 유생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받았다.

민영익(1860~1914), 홍영식(1855~1884), 서광범(1859~1897) 등이 참여한 사절단은 보빙사이다(1883.7.16~1884.5.31).

개화 반대 여론으로 인해 비밀리에 (일본으로) 출국한 사절단은 조사 시찰단이다(1881.4~7). 사실상의 '3차 수신사'이다.

정답>

'진무사 정기원(1809~?)의 장계에, 초지와 덕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저의 불찰인데, 광성보에서는 군사가 다치고 장수가 죽었으니 저의 죄가 더욱 큽니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에 전교하기를, 병가의 승패는 늘 있는 일이다. 저 흉측한 무리들이 지금 다소 물러가지는 했으나 목전의 방비를 더욱 소홀히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초지', '덕진', '광성보' 등의 말을 통해 주어진 자료는 신미양요 때의 일임을 알 수 있다(1871, 고종 8).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한 것은 고종 12년인 18759월의 일이다.

오답 해설>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운 것은 고종 3년인 18667월의 일이다.

(프랑스의 극동 함대 사령관인) 로즈 제독(1812~1882)의 함대가 양화진을 침입한 것은 186610월의 일이다(병인양요).

오페르트(1832~1903)(충남 예산에 있는)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한 것은 고종 5년인 18685월의 일이다.

조선 정부가 프랑스인 선교사들을 처형한 것(12명 중 9)은 고종 3년인 18662월의 일이다(병인박해). 이후 불과 수개월 사이에 국내 신도 8,000여 명도 학살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1830~1884)가 톈진에 있던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참고로 헌종 5(1839)에 일어난 기해박해에서도 로랑 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 주교와 피에르 모방, 자크 샤스탕 신부 3명이 처형된 바 있다.

정답>

 상황으로 볼 때 주어진 자료는 고종 21년인 1884년에 발생한 갑신정변을 가리킴을 짐작할 수 있다(1884.12).

갑신정변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은 이듬해 1월에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1885.1). 참고로 청과 일본은 같은 해 4월에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1885.4).

오답 해설>

최익현(1833~1906), 민종식(1861~1917) 등이 주도한 사건은 을사의병 봉기이다(1905~1906).

구본신참에 입각하여 개혁이 추진된 것은 광무개혁이다(1896~1904).

김기수(1831~1894)가 수신사로 파견되는 것은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체결 때문이다(1876.2). 오고가는 기간을 빼고 약 20일 간 도쿄에 머물면서 개화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였다. 견문기로 일동기유(日東記游)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를 남겼다.

외규장각 건물이 불타고 의궤가 약탈당한 것은 병인양요 때의 일이다(1866.10).

정답>

'우리가 살펴볼 문화유산'이라는 제목 아래 '동고산성''경기전'이 제시되어 있다. 이어 동고산성은 '견훤이 세운 후백제와의 관련성을 짐작하게 해주는 수막새 등이 출토'되었으며,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곳이며, 그 옆에는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여기서 동고산성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승암산에 있는 산성이고, 경기전(慶基殿)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납동에 소재한다.

동학 농민군이 정부와 화약을 체결한 장소도 전주()이다(1894.5.8, 전주 화약).

오답 해설>

김헌창(?~822)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지는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이다(822, 신라 헌덕왕 14).

성왕(재위 523-554)이 새롭게 도읍지로 삼은 지역은 사비(지금의 충남 부여)이다(538, 백제 성왕 16).

강우규(1859~1920)가 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곳은 서울[서울역]이다(1919.9.2).

신립(1546~1592)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맞선 격전지는 충북 충주(탄금대)이다(1592.4).

정답>

'청일 전쟁 이후 열강이 침탈한 이권'이라는 제목 아래 국가별(열강별) 이권 침탈 사례가 표로 제시되어 있다.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다(1896, 고종 33)(프랑스는 1896년에 경의선 철도 부설권 획득). 그런데 미국은 이를 2년 뒤인 1898(광무 2)에 일본에게 팔았다.

오답 해설>

독일은 1897(광무 원년)(강원도) 당현 금광 채굴권을 획득하였다.

일본은 1898(광무 2)에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미국은 1896(고종 33)(평북) 운산 금광 채굴권을 획득하였다.

러시아는 1896(고종 33)(두만강와 압록강 유역 및)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을 획득하였다.

정답>

왼쪽 말풍선에 '그동안 국정 논의를 주도한 군국기무처가 폐지되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이제는 김홍집과 박영효가 주도하는 내각에서 여러 개혁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밑줄 그은 '개혁'은 군국기무처가 주도한 제1차 갑오개혁이 끝나고(1894.6.25~12.17) 2차 갑오개혁이 추진됨(1894.12~1895.8)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331)로 개편한 것은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오답 해설>

통리기무아문과 12사가 설치된 것은 고종 17년인 188012월의 일이다.

청의 연호를 쓰지 않고 개국기년을 사용한 것은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한 것 역시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하고 과거제를 폐지한 것 역시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언론 3사도 폐지).

정답>

'독립 유공자 인물 정보'라는 제목 아래 '이위종(1887~?)'이 제시되어 있다. 주요 활동으로 '1. 네덜란드에서 열린 (2)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한 것과 '2. 연해주에서 (19084월에) 결성된 동의회(同義會)의 회장으로서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밑줄 친 특사는 곧 헤이그 특사를 가리키는 바 특사가 파견(1907.4)된 배경은 190511월의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으로 인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되고, 이듬해 2월에는 통감부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 각국에 호소하고자 하였다.

오답 해설>

(헤이그 특사 파견 결과)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다(1907.7.20).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가 부임한 것은 19108월 한일 병탄 때문이다(1910.8.22).

기유각서를 통해 일제에 사법권을 박탈당한 것은 19097월의 일이다(1909.7.12).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집권 1913-1921)이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한 것은 19181월의 일이다(191818일에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

정답>

'한국 창의병대가 일본 원정대를 몰살하다'는 제목 아래 '지금 서울 근처 각 지방에 의병이 많이 모여 서울을 치고자 하는 모양인데, 수효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한 곳에는 800명 정도 된다고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해산된 한국 군인들이 선봉이 되어 기동하는데 곳곳의 철로와 전선을 끊고 일본 순검이나 철로와 전보국의 사무원을 만나는 대로 죽인다 하며 ······ 녹도 땅에 의병을 치러 갔던 일본 원정대는 처참하게 몰살되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는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봉기한 '정미의병'들이 '서울을 치고자' '서울 근처 각 지방에 많이 모여' 활동을 펼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자료는, 공립신보 1907920일자 기사). 그리고 그 결과 경기도 양주에 집결한 '정미의병'들은 190712월에 13도 창의군(창의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을 결성하였고(이때 총병력은 1만여 명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해산된 군인 3,000명이 포함), 이듬해 1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치게 된다(300명의 선발대가 서울 부근까지 진격했다가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아 후퇴).

 

제시된 연표에서는 한일 의정서가 체결된 19042월과 국권이 피탈된 19108월 사이인 '() 시기'에 해당한다.

정답>

'이 책(한일 관계 사료집)()/가 국제 연맹에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호소하기 위해 편찬한 것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여기에는 삼국 시대 이후의 한일 관계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 방식과 3·1 운동의 전개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여기서 한일 관계 사료집을 편찬한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임시 정부가 임시 사료 편찬소를 통해 19197월에 편찬).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1919.11).

오답 해설>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한 단체는 의열단이다(1932.10).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1898~1958)이 중국 국민당과 교섭하여 중국 난징 교외에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한 단체는 조선어 학회이다(1931.11, 조선어 연구회에서 명칭 변경). 조선어 학회는 193310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또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고 1935년부터 표준어를 사정하여 이듬해인 193610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간행하였다.

태극 서관을 운영하며 계몽 서적을 보급한 단체는 신민회이다(1908.5).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지원한 단체는 신간회이다(1929.11).

정답>

'○○시 역사 여행'이라는 제목 아래 '동삼동 패총 전시관''정공단', '백산 기념관', '임시 수도 기념관'이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정공단은 임진왜란 초 순절한 부산 첨사 정발(1553~1592)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제단이며 백산 기념관은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1885~1943)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이다.

의열단원 박재혁(1895~1921)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벌인 것은 19209월의 일이다.

오답 해설>

(고등학생들이 주도한) 2·28 민주 운동이 시작된 곳은 대구(광역시)이다(1960.2.28).

2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된 곳은 서울(특별시)이다(1947.5.21).

강주룡(1901~1931)이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전개한 곳은 평양이다(1931.5.28).

지주 문재철의 횡포에 맞서 농민들이 소작 쟁의를 벌인 곳은 전남 신안군 암태면에 딸린 섬, 암태도이다(1923.8~1924.8, 암태도 소작 쟁의).

정답>

왼쪽 말풍선에 '()에서 설립한 출판사인 개벽사는 다양한 잡지를 발간했는데, 그 중에 별건곤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별건곤은 개벽이 일제에 의해 폐간된 후 발간된 월간지로, 취미(와 실익을 위주로 한 대중) 잡지임을 표방했으나 시사 문제를 실어 기사가 삭제되기도 했다'는 대답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는 천도교임을 알 수 있다. 개벽이 창간된 것은 19206월이고, 별건곤이 창간된 것은 192611월이다(개벽이 강제 폐간된 것은 19268).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소년 운동을 추진한 종교 단체 역시 천도교이다(천도교 소년회, 1921.5). 참고로 천도교에서 잡지 어린이를 발간한 것은 19233, 신여성을 발간한 것은 19239월이다.

오답 해설>

박중빈(1891~1943)을 중심으로 새생활 운동(과 간척 사업)을 펼친 종교 단체는 원불교이다(1916.4).

중광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한 종교 단체는 대종교이다. 대종교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인 중광단이 만주의 간도 지역에서 결성된 것은 19113월의 일이다. 1919년에 이르러 대한 군정회, 대한 군정부로 개편하다가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 대한 군정서(북로 군정서)가 되었다.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한 종교 단체는 개신교(북감리교)이다(1885.8).

경향신문을 발행하여 민중 계몽을 위해 노력한 종교 단체는 천주교이다(1906.10).

정답>

'행동 강령'이라는 제목 아래 '1.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체 차별 철폐, 2. 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3, 조혼 폐지 및 결혼의 자유, 4. 인신매매 및 공창 폐지, 5. 농민 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6. 부인 노동의 임금 차별 철폐 및 산전 산후 임금 지불, 7. 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 노동 및 야업 폐지'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강령)1920년대 대표적인 여성 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행동 강령임을 짐작할 수 있다(19275월 결성).

근우회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오답 해설>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단체를 굳이 들자면 '종교계'를 들 수 있다. 손병희와 권동진 등 천도교 측이 15, 이승훈과 길선주 등 기독교 측이 16, 한용운과 백용성 등 불교 측 2명이 기미 독립 선언서를 만들어 서명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대동 단결 선언이 발표된 것은 19177월의 일이다. 신규식, 신채호, 조소앙 등 14인의 명의로 발표된 선언문에는 '주권 재민 사상'이 담겨 있다["융희 황제가 삼보(三寶)*를 포기한 경술년 829일은, 우리 동지가 이를 계승한 날이니 ······ 황제권 소멸의 때가 즉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 최후의 날은 즉 신한국 최초의 날이니 ······"]. 대동단결 선언문은 201512월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652호로 지정되었다

* 삼보(三寶) : 토지, 인민, 정치

이화 학당이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에 의해) 설립된 것은 18865월의 일이다.

최초의 여성 권리 선언문인 여권통문이 공표된 것은 18989월의 일이다(1898.9.1). 서울 북촌 양반 여성들이 주축이 되고 300여 명의 여성들이 찬동해 이루어졌다(찬양회).

정답>

'이 문서에는 국가 총동원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벌금이 부과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일제는 중일 전쟁 이후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에 이 법을 근거로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고,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 말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국가 총동원법은 193841일 공포되어 그 해 55일부터 일본에서 시행되었다.

조선어 학회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4210월의 일이다. 19451월에 최종 선고가 내려졌는데, 공판에 넘어간 12명 중 무죄와 집행유예가 선고된 7명은 석방되고, 5명은 다시 수감 생활에 들어갔다. 5인 중 정태진은 같은 해 7월에 출옥하고 나머지 4(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은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를 하였으나 8·15 광복을 이틀 앞둔 813일 기각되었다. 이들 4인은 817일에 출소하였다.

오답 해설>

원산 총파업이 일어난 것은 19291월의 일이다(~4월까지 진행).

조선 태형령이 실시된 것은 19124월의 일이다(~1920331일 폐기).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창립된 것은 192211월이고, 창립 총회가 개최된 것은 이듬해인 19233월의 일이다.

경성 제국 대학이 설립된 것은 1924년의 일이다. 이때는 중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2년제 예과를 설치한 것이고, 2년 뒤인 1926년에 본과(3년제 법문학부와 4년제 의학부)를 설치하였다. 총장에는 조선 총독부 정무총감이 취임하였다.

정답>

'대한 제국 무관 출신으로 신민회 등에서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후 만주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창당하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인물은 성재 이동휘(1873~1935)임을 알 수 있다.

이동휘는 이상설과 함께 1914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종의 망명 정부인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을 주도하였다[이상설이 대한 광복군 정도령(正都領), 이동휘가 부도령].

오답 해설>

옌안에서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한 주요 인물로는 백연 김두봉(1889~1960)이 있다(1942.7).

민족 교육을 위해 [북간도(용정)에서] 서전서숙을 설립한 인물은 보재 이상설(1870~1917)이다(1906.8).

고종의 밀지를 받아 (대한)독립 의군부를 조직한 인물은 돈헌 임병찬(1851~1916)이다(1912.9).

의열단의 활동 강령인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한 인물은 단재 신채호(1880~1936)이다(1923.1).

정답>

()'북간도에 주둔한 아군 7백 명은 북로 사령부 소재지인 봉오동을 향해 행군하다가 적군 3백 명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아군을 지휘하는 홍범도, 최진동 두 장군은 즉시 적을 공격하여 120여 명을 살상하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홍범도(1868~1943)의 대한 독립군, 최진동(1882~1941)의 군무 도독부 등의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섬멸한 봉오동 전투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1920.6).

()에는 '조선 혁명군 총사령 양세봉, 참모장 김학규 등은 병력을 이끌고 중국 의용군과 합세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아군은 승세를 몰아 적들을 30여 리 정도 추격한 끝에 영릉가성을 점령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19323월부터 7월까지 전개된 영릉가 전투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수상, 대원수)] 스탈린(1879~1953)에 의해 많은 한인('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은 19379월부터이다(17만여 명이 순차적으로 강제 이주).

오답 해설>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것은 19216월이고, 3부가 조직된 것은 19246월에서 19253월 사이이다(19246월 참의부, 192411월 정의부, 19253월 신민부 조직).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에서의 패배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으로 간도 참변이 발생한 것은 192010월의 일이다(~1921.4).

독립군 연합 부대가 청산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192010월의 일이다(청산리 대첩).

일제가 독립군을 탄압하고자 미쓰야 협정을 체결한 것은 19256월의 일이다. 미쓰야 협정이란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1880~1959)와 중국 동삼성[만주]의 군벌인 장쭤린(1873~1928) 사이에 체결된 협약으로, 만주에서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면 이를 반드시 일본 영사관에 넘길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정답>

'이곳은 독립운동가 조성환(1875~1948)이 태어난 여주의 보택리 고택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는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 창설을 주도하고, 군무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가옥은 그의 아버지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하였다고 전해지며, 국가 민속 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1940917일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총사령부)임을 알 수 있다.

한국 광복군은 1945년에 이르러 국내 정진군을 조직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다.

오답 해설>

숭무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한 지역은 미주의 멕시코(유카탄의 메리다 지역)이다(1910.11). 지역회 한인 회장 이근영(?~?)의 주도로 수십 명의 한인 청년을 모아 사관(士官)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쌍성보 전투에서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한 군대는 한국 독립군(지청천 총사령)이다(1932.9~11).

중국 팔로군과 함께 호가장 전투에서 활약한 군대는 조선 의용대(화북 지대)이다(1941.12). 호가장은 중국 하북성 태항산 줄기에 닿는 작은 마을이다.

중국 관내(關內)*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이다(1938.10).

*관내를 관중(關中)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중국 본토 지역을 가리킨다(만주, 즉 동북 3성은 관외). 예전 진()나라 때 수도인 장안 일대 주변에 4개의 관문을 설치한 것에서 연유한다.

정답>

'역사 속 오늘'이라는 제목 아래 '411'이 제시되어 있다. '오늘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가담했다가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사망이 확인된 날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가 눈에 최루탄을 맞은 상태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19603·15 부정 선거(4대 정·부통령 선거)에 항의하다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1943~1960) 학생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의 하야로 허정(1896~1988)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다(1960.4.27~6.15).

오답 해설>

조봉암(1898~1959)을 중심으로 진보당이 창당된 것은 195611월의 일이다(~1958.2).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194810월의 일이다(1948.10.23).

귀속 재산 관리를 위해 신한 공사가 설립된 것은 19463월의 일이다(~1948.3).

자유당이 정권 연장을 위해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19527월의 일이다(1952.7.4, 같은 해 77일 공포, 1차 개헌이자 '발췌 개헌'). 참고로 이승만은 이를 통해 같은 해 85일에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정답>

'시사만화로 보는 현대사'라는 제목 아래 '이 만화는 민생고 해결을 외치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찰에게 과잉 진압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 '고바우영감', 동아일보 1979813일자). 이어 '가발 생산 공장의 여성 노동자 180여 명이 업주의 폐업 조치에 맞서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자, 1천여 명의 무장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후 이 사건은 YH 무역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YH 무역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박정희 정부 말기로, 19798월의 일이다(1979.8.9~11).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난 것은 19791016일의 일이다(~20).

오답 해설>

3·1 민주 구국 선언이 발표된 것은 19763월의 일이다.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국회가 출범한 것은 제3차 개헌 때의 일이다(1960.6). 이때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가 채택되었다.

6·3 시위가 전개되고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1964년의 일이다.

전태일(1948~1970)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서울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것은 197011월의 일이다(1970.11.13).

정답>

'사진으로 보는 () 정부'라는 제목 아래 '프로 야구 6개 구단 창단', '언론 통제 보도 지침',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제시되어 있다. 프로 야구 6개 구단이 정식으로 창단되어 우리나라에서 프로 야구가 시작된 것은 1982327일의 일이다. 또 언론 통제 보도 지침이 있었던 것은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이다.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보도통제 가이드라인'이 시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9869, 당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발행하던 월간 지를 통해 알려졌다(일명 '보도지침 사건').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린 것은 1987610일이다(6월 민주 항쟁, 정식 대회 명칭은 '6·10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것은 전두환 정부 시기인 19859월의 일이다(1985.9.21~22). 당시 50명 규모였으며, 예술 공연단도 (남북으로) 교환되어 공연하였다.

오답 해설>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이다(1972.7).

개성 공단 착공식이 있었던 것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이다(2003.6.30).

금강산 해로 관광이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이다(1998.11.19,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북한의 장전항을 향해 처음 출항). 참고로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9월부터 금강산 육로 관광이 개시되면서 해로 관광은 20041월에 중단되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문이 발표된 것은 노태우 정부 시기의 일이다(199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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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캉드쉬 총재 귀하'라는 제목 아래 '1. 첨부된 경제 계획 각서에는 향후 3년 이상 한국이 실행할 정책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정책은 현재의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한 근본 원인을 해결하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며, 한국 경제를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 경제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향후 3년간 특별 인출권(SDR) 155억 달러 규모의 국제 통화 기금(IMF) 대기성 차관을 요청합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문서)는 김영삼 정부 말기 외환 위기의 발생으로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한 사실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1997.12.3). 참고로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1823일에 IMF 관리 체제가 종료[채무 조기 상환]되었다.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인 노사정 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19981월의 일이다.

오답 해설>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이 창립된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511월의 일이다.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의 3저 호황이 있었던 시기는 전두환 정부 말기와 노태우 정부 초기이다(1986~1988).

2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 불황이 심화된 것은 박정희 정부 말기인 197810월의 일이다.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가 실시된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38월의 일이다(1993.8.12).

 

정답>

'세계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 아래, 맨왼쪽 말풍선에는 '국제 평화와 안전 보장을 목적으로 결성된 유엔에 가입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919월에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사실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1991.9.18, 46차 유엔 총회). 이어 가운데 말풍선에는 '세계 경제 발전과 무역 촉진을 도모하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OECD에 우리나라가 가입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로, 199612월의 일이다(1996.12.12). 마지막으로 맨오른쪽 말풍선에는 '세계 주요 20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 경제 협의 기구인 G20 정상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가 G20 정상 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11월의 일이다(2010.11.11~12).

 

이상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가 된다.